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만주 전략 공세 작전/작전 경과 (문단 편집) == 작전 진행 == 바실렙스키의 작전은 이전에 바실렙스키가 짠 작전답지 않게 단순하지만 거대한 크기를 자랑했다. 소련군의 공세는 기본적으로 3개의 축선으로 진행되었다. 목적은 만주 전체를 장악하고 관동군을 모두 섬멸하는 것이었다. 자바이칼 전선군은 제1극동 전선군이 만주 동쪽에서 치고 들어가는 동안 만주 서부에서 공세를 가할 것이었다. 이 두 축선에서의 공세는 신경, 장춘, 하얼빈, 길림을 손에 넣는 것이 목표였다. 제2극동 전선군은 만주 북부에서 조공을 가해 하얼빈과 치치하얼로 진격하는 것이 목표였다. 남사할린과 쿠릴 열도 내 작전은 만주에서의 성공에 따라 결정될 예정이었다. 작전 계획은 재빠른 기동을 통한 일본군 방어 계획의 무력화와 장기전 회피, 그리고 일본군이 서방 연합군에 항복하기 전에 만주를 장악하는 것에 중요도를 두었다는 걸 반영해 준다. 극동전략방면군 사령부가 7월 25일까지 모든 공세 준비를 마치라고 명령했지만 전 병력의 공세 준비는 8월 7일에 끝났다. 이 시간 동안 극동전략방면군 사령부는 자바이칼 전선군과 제1극동 전선군의 공세에 대한 도상 연습을 실시해 보고 계획을 조정했다. 초기 계획은 자바이칼 전선군이 제1극동 전선군보다 먼저 공세를 하는 것이었다. 8월 6일에 [[히로시마시|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짐에 따라 공세를 결정할 시간은 이틀로 좁혀졌다. 극동전략방면군 사령부는 자바이칼 전선군에 제일 강력한 주공과 작전 기간 10~15일 동안 관동군에 대한 350킬로미터 깊이의 전략적 쐐기를 밖아 넣는 것을 명령했다. 두 제병협동군(17군과 39군)과 제6근위전차군이 제1제파로 자바이칼 전선군의 주공을 맡아 할룽-아샨 오새 지대를 남쪽으로 피해 우회하고 장춘으로 진격할 것이었다. 주공의 제1목표는 서부 만주의 관동군 방어선을 돌파하여 다싱안링 산맥을 넘어 공세 10~15일 후 루페이아 솔룬을 점령하는 것이었다. 최선봉인 제6근위전차군은 내몽골 사막 지대를 넘어 다싱안링 산맥을 넘고 공세 5일째에 350킬로미터를 주파해 루페이를 함락하고 치흐펑을 공략해 신경과 장춘으로 치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자바이칼 전선군은 주공을 도울 2개 축선의 조공을 조직했다. 소련-[[몽골]] [[기병]]-기계화 집단은 내몽골 사막을 건너 다싱안링 산맥 남쪽에서 칼간과 돌리노어로 진격할 것이었다. 제36군은 두로이와 스타로-츠루카이투이에서 아르군 강을 건너 만주 서부 관동군의 핵심 요새인 하일라얼을 점령하기 위해 다싱안링 산맥 북서부 일대의 일본군을 축출할 것이었다. 거친 지형과 전선군 단위에서 접촉하기에는 너무 넓은 공세 정면 때문에 자바이칼 전선군과 제2극동 전선군의 전투 지경선을 그을 필요는 없었다. 자바이칼 전선군의 제2제파는 제53군으로 다싱안링 산맥을 넘어 제6근위전차군을 후속하는 것이었다. 자바이칼 전선군의 성공은 속도, 기습, 그리고 관동군의 전 방어선에 대한 대대적인 선제공격 효과에 달려 있었다. 속도와 기습을 위해 모든 제대에 전차, [[기계화보병]] 제대가 배치되었다. 전선군급 선견 제대로 제6근위전차군이 있었으며 제39군의 경우 유일하게 전차 [[사단(군사)|사단]]을 선견 제대로 배속받았다. 기타 [[야전군]] 사령부 직할로 1~2개 전차여단을, [[군단]]급에 1개 전차 [[여단]]을, 필요하면 사단급에도 1개 전차 여단이 배치되었다. 기동 선견대들은 본대에서 20~30킬로미터 선봉에서 평균 70킬로미터 이상의 속력을 내야 했다. 자바이칼 전선군의 작전에는 큰 위험부담이 있었는데 바로 다싱안링 산맥을 넘어가는 것이었다. 관동군이 다싱안링 산맥에 소규모라도 병력을 배치하거나 아니면 산맥으로 재빨리 기동해 방어선을 형성할 경우 자바이칼 전선군의 진격은 한없이 느려질 것이었기 때문이다. 산맥 넘기가 실패한다는 것은 작전의 실패와 전선의 장기화를 의미했다. 하지만 소련군은 결국 이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1개 전차군과 1개 제병협동군을 산맥을 넘게 했고 그리하여 엄청난 효과를 보게 된다. 제1극동 전선군은 만주에 2번째로 전략적인 쐐기를 박을 것이었다. 제1극동 전선군의 임무는 만주 동부의 일본군 요새 지대를 우회하거나 돌파하여 15일에서 18일까지 진격해 폴리를 지나 무단장에서 왕칭으로 도달하는 것이었다. 2개 제병협동군(제1적기군과 제5군)과 제10기계화군단이 주공이 되어 블라디보스토크 북서쪽의 그로데코바에서 출발해 무단장으로 진격할 것이었다. 두 번째 목표로 길림과 장춘, 하얼빈을 장악하며 자바이칼 전선군과 합류한는 것이 주어졌다. 2개 야전군에 전선군의 대부분의 지원이 집중됐다. 제35군은 한카 호수 북쪽의 레소카봇스크-이만 지역에서 출발해 밀산, 링커우, 그리고 폴리를 공격할 것이었다. 제25군은 우수리스크 북서쪽에서 출발해 퉁닝, 왕칭, 그리고 옌지 지역을 손에 넣을 것이었다. 제25군은 관동군 병력이 한반도로 탈출하는 것을 차단하고 한반도로 진격할 것이었다. 제1극동 전선군은 1개의 진격 축선으로 전력을 집중시켜 일본군 요새 지대를 뚫어버릴 계획이었다. 제10기계화군단은 이를 위해 제5군 진격 지역에 배치되었다. 전선군 에비대인 제87소총병군단, 제88소총병군단, 제84기병사단은 일본군의 방어가 완강할 경우 투입될 것이었다. 일본군의 빽빽한 방어를 뚫고 제1극동 전선군 병력들은 매일 8~10킬로미터를 주파하며 무단장과 왕칭을 점령해야 했다. 자바이칼 전선군과 제1극동 전선군이 장춘에서 합류하면 자바이칼 전선군 병력들은 랴오둥 반도로 몰려가 뤼순을 점령할 것이었다. 제2극동 전선군은 하바로프스크 남쪽의 블라고브쉬첸스크에서 작전을 개시해여 아무르 강과 우수리 강을 도하할 것이었다. 제2극동 전선군의 공세는 관동군이 자바이칼 전선군과 제1극동 전선군의 공세를 막느라 예비 전력을 동서로 보내는 사이 증원을 받을 수 없게 된 만주 북부의 일본군에게 강력한 압박이 될 것이었다. 제병협동군인 제15군이 전선군의 주공으로서 아무르 강을 레닌스코예에 지역에서 건너 송화강 남쪽 지대로 진격할 것이었다. 제15군의 제1목표는 아무르강과 송화강 유역의 일본군 요새 지대를 고립시키고 무너트린 다음 강 유역의 모든 일본군을 소탕하는 것이었다. 제15군은 다음으로 산싱과 하얼빈으로 진격해 제1극동 전선군 병력들과 합류할 것이었다. 제2극동 전선군에는 2개의 조공 축선이 할당됐다. 제2적기군은 아무르 강을 블라고베쉬첸스크에서 도하해 순우로 진격해 치치하얼로 진격할 것이었다. 제5독립소총병군단은 하바로프스크 남쪽 우수리 강을 따라 배치되어 비킨에서 공세를 시작해 파오칭을 장악할 것이었다. 그리고 군단은 폴리로 진격해 제1극동 전선군 병력들과 합류할 것이었다. 작전이 개시되면 소련군의 재빠른 진격으로 인해 관동군은 중국 북부나 조선의 일본군에게서 지원을 받지 못할 것이었다. 소련군은 관동군이 모든 지역을 방어하려고 하게 몰아붙일 것이었다. 극동전략방면군 사령부는 8월 9일 새벽이나 아침에 공세를 개시할 것을 결정했다. 바실렙스키를 비롯한 작전 입안자들은 공세의 제1국면은 국경지대 방어선을 돌파하거나 우회한 부대들이 만주 중부로 빠르게 기동하는 것이고 제2국면은 포위당하거나 우회당한 일본군 방어 거점들을 섬멸하는 것으로 예상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